왕초보재무 2014. 5. 3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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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확실히 그럴지도 몰랐다.

 

 

 

 

저나 나나 워낙 별난 놈들이니까, 알아서들 가개 약진하는 거죠, 뭐.

 

 

 

늘 제 한 몸 둘 곳을 못 찾아서 물에 기름처럼 겉돌고 있는 지섭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견뎌 내야 해.

 

 

 

참아야 해, 박지섭.

참을 수 있었다. 참으면 지나갈 것이고, 지나가면 편안해지리라.

 

 

 

 

다만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모두의 시선이요 모두의 웃음 소리였다.<--- 이것도 견뎌야 함... 시선

 

 

 

늙은이같이.

 

 

 

그래, 좋다... 하고 철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일어서야 해.

 

 

 

참아야 해.

포기하기엔 너무 큰 꿈을 위해서였다.

 

 

 

오늘은 마음껏 마셔. 무슨 주정을 해도 다 받아 줄게.

 

 

 

아뇨, 싫습니다.

 

 

 

언제나 남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던.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앞으로도 벗어나지 못할.

나는 누구냐.<--- 시선이라

 

 

 

더 심한 일들을 앞으로도 해댈 몸이 아닌가. 철기는 갑자기 더 씁슬해진 것 같은 맥주를 목구멍으로 흘려 넣었다.

 

 

 

미귀를 해버릴까 하는 충동도 은근하게 마음속에서 일고 있었다

 

 

 

철기 자신은 살인자였다.

 

 

 

정치란 더러운 거야. 사람으로서의 일류들이 하는 일이 아니야

 

 

 

싫어도 싫은 내색은 하지 않고, 좋아도 결코 마음속으로부터 좋아하지는 않는 녀석... 그게 지섭이었다.

너도 깨고 나와야 돼.

 

 

 

심장이, 아니 그보다 더 깊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쿵쿵쿵쿵 뛰고 있었다.

 

 

 

넌 어떻게 된 놈이냐? 중학교 때도 그런 패싸움을 선동하더니, 또야? 네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는 거야?

 

 

퇴학입니까?

그랬으면 좋겠나?

철기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결국은 철기 자신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준 셈이었다.

개새끼

 

 

 

또 무슨 사건인가가 자신을 향해 닥쳐오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사건이 지나간 후에 자신은 그지없이 참담한 모습으로 남겨지게 되리란걸.

 

 

 

나머지들은 농락을 당하건 말건 우리는 그냥 이대로 참아야 한다 이거야?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붉어지지 않을 것임도 지섭은 알았다

 

 

 

철기는 물러나지 않을걸?

 

 

 

눈 앞에 펼쳐진 제 몫의 공간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제 일은 어디까지 번질 것인가. 견뎌 낼 수 있을까.

 

 

 

철기는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철기다운 자세라고만 생각되었다. 늘 홀로 버티고 서 있는 철기의 자리를 자신은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흘끗 올려다본 철기의 두 눈에는 전보다 더한 광기 같은 것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지독한 놈

 

 

견뎌 내야만 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외치면서 찢고 또 찢었다. 하나의 세계와도 같은 것이 조각조각 찢어져서 눈앞에 하얗게 나부꼈다. 이틀 후 지섭의 정학 공고가 게시판에 나붙었다.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거야 저도 인정을 합니다.

 

 

 

집 나왔어

가능한 한 심드렁하게, 그리고 불량스럽게 들리도록 지섭은 내뱉었다.

 

 

 

미우로서는 정우의 그런 고집과 정열이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그 눈은 예전에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지섭은 무언가 일이 꼬여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번 견뎌 보는 거야.

그랬다. 끝나지 않는 아픔이 어디 있던가

 

 

 

누구를 잡아 일으킨다거나, 누구를 쓰러뜨려 보지도 못했지만 지섭은 쓰러져 본 적이 없었다. 늘 참고 견뎌 냈을 뿐

 

 

 

침대 모서리를 쾅 내리치고 나서 대대장은 더욱 얼굴을 붉혔다.

 

 

 

오일륙이 있고 나자 당시의 최고 회의 건물로 단신 찾아가셨다는 거야. 베짱이 어느 정도이신지 짐작이 가지? 일개 대위의 몸으로 말이야.

 

 

 

현 소위란 놈이 정신을 못 차리니 걱정이지. 참, 아무리 꼴통이라지만.

 

 

 

둘이서 나 잡아먹을 궁리나 했겠지 뭐

 

 

 

자네도 독종은 독종이야. 어떻게 마취도 없이 꿰매는 데 아, 소리 한번 안 내나?

 

 

 

단순히 받았다는 행위, 그 폭격 자체에 자극받은 거라고 난 생각해

 

 

 

난 끝까지 가볼 테야

 

 

 

박대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내심을 충분히 짐작한다는 얼굴로 현 소위는 말을 잇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이건 제 사생활입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로 어디서 압력이 들어오든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지섭은 그 고통을 이기고 나와야 했다

 

 

 

더 많은 고통을 주마

보이지 않는 지섭에게 철기는 낮고 음산하게 속삭였다

 

 

 

정말로 실탄이라도 있다면 드르륵 긁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거칠게 솟구쳐 올랐다

 

 

 

상황을 모르는 질문에 발끈 신경질이 치밀었지만 박대위는 좋게 대답하기로 했다

 

 

 

박대위는 와하하하... 하고 화랑다방이 떠나가라고 웃음을 터뜨리고만 싶었다

 

 

 

철기는 왠지 앞으로 자신이 하려는 일에 박 중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