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벽1
언제나와 같이 일방적으로 눌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25
그 낮은 목소리에서 지섭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현철기의 차디찬 분노를. 28
그는 굽히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꼭 여기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어디선가는 튀어 오를 것이다. 34
아마 저쪽에서는 노발대발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현 소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다. 언제나 그랬었다. 현철기는. 40
가장 철저하게 집단적 가치만을 요구하는 조직 속에서, 가장 철저하게 나 개인을 주장해 보이기 위해서야. 50
그야 마음만 먹으면 서울대 수석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현 소위였지만..... 77
그 유서를 가지고 있다가 각 언론에 전달했던 게 바로 박지섭이었지요. 85
지섭은 야릇하게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학생운동 쪽에서도 이제는 선배요 지도자 격인 그녀가 아직도 어린 소녀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안타까웠다. 93
도발인 셈이었다. 거 좋지. 들읍시다!하고 육사 그룹이 박수를 쳤다. 101
철기는 오히려 스스로의 자존심에게 미안했다. 이런 거지 같은 곳으로 흘러 와서 이런 거지 같은 놈에게 이런 거지 같은 소리나 듣고 앉아 있다니 108
결국은 그들 편에서 분개하고 달려들었으니까. 공교롭게 들어서는 장 마담 쪽에 시선을 주다가 코를 한 대얻어맞기는 했지만, 그만하면 선전 포고로는 충분하달까.
덤벼들 봐라. 116
그중에 너만한 신분의 아이는 아무도 없다. 알겠니? 192
난 자리잡았다. 몇 놈 패주고... 몰매 한번 맞고... 그리고 실력을 인정받았지. 이젠 제주 시내에선 이 삐빠 모르는 놈 없을 거다. 205
모르는가.... 그분은 내 인생의 전부일세. 217
하나, 둘 ... 지섭은 속으로만 헤아렸다. 실상 학교 주위에 뛰놀고 있는 것은 더러운 염소들이었다... 넷, 다섯을 세고 지섭은 마무리를 지었다. 256
좆아가고 싶은 생각이 뭉클,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 ...) 혼자 돌아서면서 지섭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새 자신은 영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 버렸다는 것을. 282
그게 결코 단순한 침묵이 아님을 지섭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으면서 때를 살피고 있음이었다. 321
미우가 왔다. 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정우도 왔다. C...는 뿔을 내밀었다. 323
그 뒷모습에서 지섭은 다시 한 번 짙은 예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를 저지르려 하고 있다는. 326
최 중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서 오너라, 하고 철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329
지지 않겠다는 최 중사의 전의를 팽팽하게 피부로 느끼면서 철기는 빳빳하게 목을 세웠다. 329
"자넨 뭔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거 아닌가?"
"......" 330
자신도 도를 넘게 흥분해 가고 있음을 지섭은 깨달았다. 침착해, 박지섭. 344
대대장은 벌떡 일어서면서 손을 날려 왔다. 왼쪽 뺨에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철기는 속으로 외쳤다. 내가 이겼다. 347
중대장도 맞고함을 쳐왔고 철기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겼다. 348
중대장실을 나오면서 철기는 다시 속으로 외쳤다. 내가 이겼다!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