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북리뷰 - 삶은 홀수다(김별아)

왕초보재무 2014. 1. 1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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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삶은 홀수다(김별아 산문)
저자 : 김별아
출판사 : 한겨레출판
2012년 10월 초판 1쇄

김별아는 글을 잘 쓴다. 너무 잘 써서 그가 쓰는 표현을 적어놓고 따라해보고 싶을 정도이다. 어떻게 똑같은 말을 써도 이렇게 맛깔나게 쓸 수 있을까? '글맛'을 아는 작가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기적으로 써 놓은 칼럼을 엮어서 내 놓은 류의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책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내가 찾은 주제는 하나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유려한 표현 만큼이나 각 꼭지의 글에는 이 시대 힘든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격려가 베어 있다.

 

 

삶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아마도 후자인 것 같다. 약간 진보적 느낌이 나는 글들 탓인지 모르겠다. 비슷한 느낌을 갖고 공지영의 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소설가 김별아의 소설이 읽고 싶어 진다. 부제목인 '김별아산문'처럼, 산문은 이렇게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목차

작가의 말 : 어섯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들

/1부/
달려라 앨리스

/2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3부/
사랑은 맛있다

/4부/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글귀
어지간히 청순한 뇌를 가진 요변쟁이, 혹은 거짓말로 덮는 사이코패스라야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식으로 뒤스럭뒤스럭 지랄버릇을 떠는 것이다.43

 

여전히 춥다. 슬픔은 얼음가시처럼 날카롭다. 봄은 쉽사리 와주지 않을 것만 같다.46

 

붉은 우레탄 산책로 위에 씹다 뱉은 껌처럼 들붙어 있는 지렁이와 달팽이의 무수한 사체를 차마 무시하고 지나기 어렵다. 49

 

타인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밧줄을 움켜잡고 산다.55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언론들이 젯밥에 눈이 멀어 염불에는 입 닥치고 있는 사이, 소비자 물가는 살인적인 수준으로 치솟아 월급과 자식 성적 말고는 모든 것이 다 올랐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63

 

여름에는 대하소설을 읽고 겨울에는 고전을 보며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것이 가난하고도 호화로운 작가의 피서, 피한법이다. 64

 

나는 종종 의식적으로, 때로 무의식적으로 산과 삶을 헷갈렸다. 73

 

아파트 화단에 매화가 피었다. 세상이 난마라도 봄은 온다. 그런데... 설탕 값까지 오르면 어쩌라는 거야? 78


이즈음 나는 시시때때로 "사는 게 참 되다"며 엄부럭을 부리던 터였다. 나를 불면과 우울에 시달리게 하는 건, 고단한 밥벌이와 떼어먹힌 인세와 헛똑똑이의 자괴감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109


 

봄! '보다'에 그 어원이 있다는 계절이 천지간에 오색빛깔로 한창이네. 며느리에게 양보한다는 따가운 봄볕에 노화의 주적인 자외선이 걱정되지만 모자 따위는 벗어젖히네. 119


 

현실의 분노와 고통 속에서, 그래도 아이들이 희망이다. 오늘 괜한 삽질을 하면 내일 아이들이 메워야 하고, 오늘 물러서면 내일 아이들의 행군이 길어진다. 167


우리 때는 'X발'을 주로 썼는데 요즘은 'X라'가 대세인 것이 다를 뿐이다. 다만 문제는 우리 때의 욕이 비 올 때 떨어지는 낙숫물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르나 궃으나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다는 것이다. 175


'요새 젊은것들'에 대한 통탄의 역사는 가히 유구하다...거의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요새 젊은것들'은 한결같이 '싸가지'가 없고 경망스럽고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다. 182

 

곱씹어보건대 열아홉 살의 내가 저지른 돌발적인 사건들은 오직 경쟁과 억압 속에 잃어버린 나를 알고, 나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198


그렇다. 시험에선 항상 처음 찍은 것이 정답이다. 나는 가당찮은 선생이 아닌 천생 학생 체질인 게다. 203

 

판매에 실패한 그는 별안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않아 덫에 채인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살아보려는데, 죽으라고 해! 더 이상 날더러 어떡하라고?!"
장사를 하기엔 변죽과 패기가 부족하고 구걸을 하기엔 수치심과 자존심을 버릴 수 없는 사내는 길바닥 한가운데서 생떼 부리는 어린애처럼 발버둥질했다. 220